번아웃이 또 왔다. 분노와 슬픔과 냉소와 싸우고 있는 요즘이다. 살아남으려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대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찾고 그것을 지켜나가야 했다. 몰아치는 업무를 버티면서 말이다.
어떻게든 일을 짧은 기한 내에 더 주려고 하는 관리자한테도 화가 나고, 체계라곤 1도 없는 업무 상황에도 화가 나고, 나는 분명 더 나은 결과를 고민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며 개발을 하고 싶었는데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나 싶어서 슬프고, 그러다보니 냉소로 나를 방어하게 된다. 내 탓을 하지는 않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 모든 게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가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탓은 아니기도 했다.
금요일에는 휴가를 냈다. 전날부터 몸이 무겁고,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컨디션이 안 좋기도 했는데, 그래도 나는 이게 번아웃인 줄 알았다. 도무지 회사를 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은 정도의 무기력이라서 휴가를 냈었다. 그런데 병원에 가 보니 정말로 몸살감기가 왔다고 한다. 새삼 몸과 정신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와 슬픔, 냉소와 같은 감정들과 기약 없는 희망 사이에서 나는 줄다리기를 해야 했다. 현 상황에만 빠져서 체념해 버리면 여길 나올 수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이곳이 너무 싫다고 생각해버리면 이직에 성공하기 전까지 내 하루의 절반은 지옥이 된다. 눈앞에 주어진 일에는 무리하지 않을 만큼의 최선을 다하되, 일이 끝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뭐라도 해야 했다. 말로는 참 간단한데, 몇 주 해보니 이 말의 무게를 여실히 느끼고 있다.
눈 앞에 남은 카뱅 지원, 라플 지원 등의 여러 과제들을 맞닥뜨리면서 그래도 뭐라도 하고 있다는, 나의 미래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책임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라인 원서를 냈고, 라플 지원서도 작성했다. 물론 포트폴리오라는 예상 못한 변수가 있어서 며칠 더 걸릴 것 같지만... 어쨌든 뭐라도 했다. 그거면 됐다.
오랜만에 운동도 다녀왔다. 몸과 정신은 연결되어 있듯이, 운동에만 집중하니 잡념들이 조금은 사라지고 현재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망해봤자 이 회사 계속 다니면 된다(그것도 너무 싫지만)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됐건 몸 뉘일 곳은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만약 '이곳은 지옥이고 난 꼭 이직을 해야만 해' 라는 사고에 갇혔다면 한 번 한 번의 실패에도 나는 위태로웠을 것이다. 자꾸 까먹게 되지만 또 떠올리자. 이런 종류의 게임은 무한 게임이다. 완벽한 답도, 무조건 좋은 것도, 정해진 시간과 조건도 없이 흘러가는 종류의 것들이다. 언젠가 또 잊겠지만 종종 다시 떠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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