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연휴에 쉬고 회사도 안 가고 재택을 했어서 그런지 한 달 동안 적응했던 직장인 일상에서 잠시 멀어진 기분이다. 연휴 동안 내가 했던 생각들은 대부분 '직장인으로서의 나'보다는 '개인으로서의 나'에 가까웠다. 이전에는 뭔가를 결정하거나 생각할 때 무의식적으로 '직장'을 염두에 두었었다면, 직장과 떨어진 나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연휴 동안 나는 가족들과 부산의 친척들을 주로 만났다. 오랜 관습이 당연하던 시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전을 부치고 집안일을 조금 도왔다. 친척들로부터 이제 결혼만 하면 되겠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은 것 같다.
개인적인 의사를 묻지 않은 조언들에 기분이 나빴다기보다는, 그동안의 나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들이라서 신기한 마음이 더 컸다. 나에게는 지금 당장 우선순위가 크지 않은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지금의 내가 당장 해야 할 것들로 보일 수 있구나, 사람의 생각은 다 다르구나... 이런 생각이 앞섰다.
개발과는 조금 멀어졌었다. 무언가를 하고 싶고 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막상 뭔가를 시작하기에는 연휴는 짧았고 짧은 시간 안에 뭔가를 끝내기엔 내 의지력이 그에 미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림으로 공부하는 오라클 구조'라는 책과, '자네, 좌뇌한테 속았네'라는 책을 ebook으로 조금 읽어봤다.
연휴 때 새로운 지식들을 짧게 짧게 접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간만에 뇌과학 관련 책을 보니 이전 심리학부 시절 생각도 났다. 나와 잘 맞는 공부였고, 내가 연구에 뜻이 있었더라면 아마도 심리학부 대학원을 가지 않았을까 싶다. 새삼 나는 여러 지식들을 배우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친척들과 같이 지내는 집일지언정 밤에 잠깐이라도 혼자서 조용한 재즈 음악을 들으면서 노트북으로 웹서핑이나 간단한 공부를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게 또 나름 힐링이었다. 뭐랄까, 친척들이랑 있을 때는 어른들의 조카나 손녀와 같은 하나의 역할을 수행했다면 이 시간만큼은 그러한 역할들과 무관한 한 사람으로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렇다고 친척들이랑 있는 시간이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왔다갔다 하면서는 도합 10시간을 넘게 보냈다. 그런데 나는 대부분의 시간은 깨어 있었다. 가족들과 얘기를 하거나 혼자 음악을 들으니 시간이 빨리 갔다. 당연히 혼자 생각도 많이 했다. 나의 삶에서 현재까지는 진로나 커리어가 뗄 수 없는 부분인 만큼 앞으로 나는 어떤 일을 하게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을 주로 했다.
그러다가 문득 뭔가를 깨달으면서 생각의 전환이 왔다.
지금 이렇게 살아도 되겠구나. 나는 제법 잘 살고 있구나. 여전히 내가 익숙하지 않은 영역들은 많고 내가 풀고 싶거나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도 많지만, 풀려고 시도하면 되는 거구나. 그것 자체로 의의가 있구나. 인생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어떤 문제가 완벽하게 풀리거나 풀리지 않았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는 비단 진로 영역에 해당하는 문제만은 아니었다. 내가 마주한 모든 문제들이 그랬다. 풀어야 할 문제가 계속 남아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것 자체가 '문제 상황'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삶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풀어가려는 시도를 하는 것 자체는 좋지만, 과거의 내가 뜻하는 대로 문제가 풀려야 한다는 법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1년 전의 나는 내가 이 회사에 취업할 거라는 것도 몰랐고, 내가 소마를 통해 어떤 경험들을 할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1년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뜻대로 되지 않은 문제들도 분명 있었지만, 그렇다고 내 현재 삶이 그렇게 나쁘고 당장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 투성이는 아니지 않나.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좋지만, 현재를 즐기는 것의 소중함을 조금이나마 깨달았던 것 같다.
앞으로 다시 직장인 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생각들이 옅어질 수도 있고 또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도 무엇이 되었건 틈틈이 스스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이고, 나는 지금 잘 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면서 스스로를 격려해주는 것도 참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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